일기장.2018.03.01 11:18



누군가를 도울 때 가장 우스운 것이 
현지 상황에 맞지 않는 것들을 선심쓰듯 주는 것이다. 
몇 년전에 캄보디아에 우물파주기 사업 얘기가 
오마이뉴스 기사로 나온 적이 있었다. 
현지에서 쓸 수 없는 얕은 우물을 파서 
(수 십년간 수 만개) 
실적만 올리고 후속조치가 안되어 
상당수 사용할 수 없다는 기사였다. 
결과물이 보기 좋더라도 
상황에 맞지 않게 만들어지니 철거도 할 수 없고 
새로 팔 수도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돕고자 하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오히려 아동 교육이나 직업교육, 
현지 생산물을 통한 가공 사업으로 
지역 생태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마을 공동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노하우나 교육이 필요할수도, 
어떤 곳에서는 물고기 양식 방법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는 것이 
그들을 돕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적정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우리가 보기에는 신박하지만 그들에게는 
고급 쓰레기밖에 아닌 것들에 돈을 들여 
후원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물론 그런 기술들이 잘 활용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장, 현장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사진속 집에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벽은 구멍이 나있고 너덜너덜하며 
마루는 지저분한 것이 위생상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큰 방이 달랑 하나고 오른쪽에 
바로 돼지 우리가 보여서 위생상 더 안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필요는 사실 튼튼한 벽, 
지저분한 마루 바닥 교체도, 깔끔한 축사도 아니다. 

제일 급한 것은 바로 전기와 물. 

해가 지면 당장 저녁식사도 차릴 수가 없다. 
호수 한 가운데 떠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전기를 공급받을 수 없어서 그렇다. 
(육지여도 전기가 안 들어가는 곳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오직 태양광 발전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들의 생활력으로는 
태양전지판과 배터리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이해와 필요를 맞추면 
우리가 무엇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집이기 때문에 
벽을 두껍게 했다가는 집이 가라앉을 수 있다. 
실제 가라앉는 집들도 많아서 
물에 반쯤 들어가있는 버려진 집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돼지우리 역시 물에 둥둥 떠 있어서 
가축들의 분뇨는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가서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호수에 바로 버려지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청결한 식수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식수를 해결하는 것도 
현장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된다. 
우리야 생수를 돈 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 먹지만 
이들은 이 더러운 물이라도 정수를 해 먹어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아마 흙탕물을 빨아먹는 정수 빨대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흙탕물에 빨대 구멍을 대고 입으로 물을 빨아들이면 
중간에 있는 필터에서 
물을 깨끗하게 정수해서 바로 입으로 마실 수 있는 
굉장히 아이디어가 좋은 적정기술 상품이다. 
이런 곳에서 그런 아이디어 상품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수도 있을텐데, 
사실 이런 아이템은 상시 물이 필요한 
수상가옥에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볼 때는 좋아보이지 
현장에선 의미없는 물건들이 많다. 

앞으로 나는 이런 일도 하게 될 것 같다. 
구호 현장에 필요한 것을 현장에 맞게 지원하는 그런 일. 
뭉뚱그려 해외 아동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방식이 아닌 마을 공동체나 
생태계를 현장에서 직접 돕고 살리는 일. 
(물론 내가 해외에 나갈 일은 없겠지만) 
쇼하듯 포장해서 보여주는 그런 
신파적 구호현장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의 비전과 발전을 담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 
막연하고 멀리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하게 된 일. 
10년 만에 다시 NGO세계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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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트 연남동_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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